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릴 열도 분쟁 (문단 편집) == 협상과 분쟁 == 평화조약 체결이 결렬된 1960년대 이후 소련은 일본의 영토 반환 요구를 일관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 소련이 붕괴되고 신생 러시아가 수립되자 양국 사이에 반환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사실 1990년대는 신생 러시아 연방이 친서방적인 정책을 펼쳤고, [[보리스 옐친|옐친]] 정부의 자본주의 전환 실패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시절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한 이후로는 러시아의 경제적 사정이 다시 나아졌고, 1990년대 옐친의 친서방 정권이 결국 실패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러시아가 반서방 성향으로 차츰 기울면서 강경파들의 결사 반대와 현지 거주민/어민들의 강한 반발로 없던 일이 되었다. 사실 푸틴도 처음부터 결사 반대하던 것은 아니고 1990년대 후반 및 2001년 가진 러일 정상회담에서 2개 정도 돌려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가 거주민들 및 강경 극우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들으면서 강경책으로 돌아섰다. [[알래스카]]를 러시아 땅이라고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정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자유민주당]]은 이 당시 푸틴을 매국노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시위를 벌였다. 푸틴도 이가 갈리겠지만 당시 여론이 압도적으로 이런 극우파들을 옹호하니 결국 푸틴이 물러섰는데 극우단체들도 푸틴이 순순히 물러나고 일본에 물러서던 태도를 수정하자 푸틴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지지하였고 푸틴도 이런 극우들이랑 우호적 관계를 맺었다. 이때 일본에서 일부가 아닌 전체 반환을 요구했기에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루머는 결국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이 의사가 전해진 당시 일본 측도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4개 섬 전체에 대한 욕심 또한 이유겠지만 이 당시부터 이미 일본은 한국과 [[독도]], 중국과 [[센카쿠 열도]] 등 동아시아 국가간 영토분쟁이 점화된 시기였기 때문에, '일부 반환'이라는 애매한 선례를 남기면 추후에 불리한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 측에서 쿠릴 열도를 자국에 유리한 선례로 남기려면 최대한 러시아 측의 실효 지배 기간을 줄이면서 일본 측이 역사적인 권리를 인정받아 전체를 반환받을 필요가 있었다. 또 푸틴 집권 후의 러시아도 소련 붕괴의 영향을 수습하여 사정이 나아지고 점차 우경화되면서 밍숭맹숭했던 태도를 버리고 네 개 중 하나도 못 돌려준다는 맞대응으로 강경하게 나왔고, 결국 4개 섬의 반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아베 총리가 20여 차례 넘게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진행하는 등 오래전부터 줄곧 크게 공을 들였음에도 북방영토 반환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서 아베 지지자들조차도 상당수가 북방영토 문제에 한해선 아베 정권의 무능한 협상력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 아베 총리 재임기간 동안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인정하며, 반대로 과거 아베 정권이 자신들이 나서면 북방영토 문제가 해결될 것 마냥 과장한 것을 비판하였다. 현재 러시아는 계속해서 북방영토 반환을 놓고 일본과의 경제 원조 및 현지 개발 협상에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일본이 하길 원하는 영토 협상은 별로 하질 않고 경제 협력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결국 러시아는 영토 반환 협상을 제대로 벌이지도 않고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얻는데 성공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게 이 영토 협상은 전적으로 러시아가 협상 자리에 나와줘야 가능한 갑인 것이기에 을인 일본이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이 러시아에 비협조적으로 나서면 역으로 협상 자체가 파토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는 러시아와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이 경기를 이김으로써 북방영토를 반환하는 토대로 삼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경기는 일본이 이겼지만, 러시아에서는 [[도요타]]를 비롯한 일제 차량에 대한 방화 사건이 일어났고 러시아 극우파들의 기존 주장을 오히려 확고하게 만드는 역효과까지 부르고 말았다.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푸틴은 일본이 4개 섬 중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경우, 최남단의 시코탄과 하보마이 섬을 돌려줄 의향이 있음을 밝혔으나 이미 일본에서는 4개 섬 반환이 정론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국민적인 비난을 감수하며 러시아와 타협하지 못했고 분쟁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대한민국에서는 [[꽁치]]잡이 [[원양어선]]들이 이 해역에서 조업하는 것을 두고 러시아 정부와 합의를 본 적이 있는데 일본이 왜 자기들을 마다하느냐며 분노한 적이 있다. 또 2011년 5월 22일부터 독도영토수호대책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독도 문제와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이 지역을 방문하자 일본이 강하게 반발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5/21/2011052100195.html?hotnews_txt|관련 기사]] 그리고 저 섬들에 조상의 무덤이 있는 [[일본인]]들이 성묘할 때 [[여권]]을 가지고 이 섬에 간 적도 있는데, 일본에서 이를 두고 큰 논란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일본 땅에 가는데 웬 여권이냐며 반발하던 극우들과, '그럼 조상님들 무덤을 그대로 놔두라는 거냐?'라면서 분노하던 일본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일본도 한국과 형식은 다르나 조상의 무덤 관리와 성묘를 매우 중시하는 국가다. 한국은 유교적, 일본은 불교적 색채가 더 강하다는 차이 뿐이지 고인의 시체 수습과 염, 성묘 문화는 동아시아 보편적으로 강조되는 문화이다. 한국에서도 불교 전통이 유교와 혼합되어 [[사십구재]]와 같은 풍습이 생겼다.] 일본은 러시아에 이런 사정이 있는 일본인들을 특별히 여권 없이 입국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무시했다. 결국 저 섬에 조상을 모시고 있는 일본인들은 지금까지도 성묘 때마다 여권으로 입국하는 절차를 밟아가면서 방문한다. 그래도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사정이 있는 일본인들에 한하여 비자를 면제한다.[* 참고로 누구나 러시아가 [[무비자]]인 한국인과 달리 러시아와 일본은 상호 방문시 비자가 필요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